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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학1 생명이냐 자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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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학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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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의 문을 여는 열쇠

“당신의 경쟁력은 무엇입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이러한 질문을 많이 들을 것이다. 이런 질문에 대하여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이 책을 쓴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나 때로는 동서양의 여러 철학자들이 등장하여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당신이 어느 분야에서 종사하든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경쟁력이 당신 자신 안에서 용솟음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대립과 갈등과 전쟁이라는 현상은 그것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부정성의 변증법에서 이미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의 마음과 풍속에는 이러한 것이 없다. 우리 한국인들의 무의식 세계를 설명하는 한이라는 개념은 대립과 갈등과 전쟁이라는 자살의 논리를 대화와 타협과 화합과 통일이라는 생명의 논리로 이끌어준다. 다시 말해 부정성의 변증법을 야기하는 자살의 철학을 긍정성의 변증법을 이끄는 생명의 철학으로 전환시켜준다. 그것은 더불어 살자는 우리 한겨레의 상식이 철학으로 조직된 것이다.

철학은 인류차원의 주체와 세계차원의 객체를 하나로 융합하여 조직하는 생명체이어야 한다. 그러한 철학을 설명하는 용어로 우리말 ‘한’보다 더 적당한 말을 알지 못한다.



2. 한철학이 여는 세상


철학은 뿌리이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등의 과학은 줄기이고 각종 기술과 문화는 열매이다. 철학은 뿌리로서 줄기와 열매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근원이다. 어떤 철학을 적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어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과학 등을 갖게 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며 어떤 기술과 문화를 갖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직접 결정한다.

한철학은 인류전체의 철학이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철학이다. 우리의 고유한 철학세계가 우리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남이 흉내 내기 어려운 우리만의 과학세계라는 줄기가 생겨나지 못하고 또한 우리만의 기술세계와 문화세계라는 열매는 영원히 생겨나지 못한다.

선진국을 기술과 문화로 따라잡는 길은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문화, 그리고 과학과 철학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일에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을 압도하는 일과 그들을 따라잡는 일은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서구의 선진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선진국이 되자는 말은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시대에는 더 이상 버티어내지 못할 정도로 고루한 생각이며 이루어지기 불가능한 허황된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새로운 선진국이 되는 일은 기존의 선진국을 압도하는 일에서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기존의 선진국들을 압도하는 일은 그들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우리만의 기술과 문화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만의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이들의 존재는 모두 우리만의 철학에 달려 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그러나 우리 한겨레의 한철학을 아직도 외래학문과 외래정신을 위주로 설명하려는 그 구태의연하며 또한 거꾸로 뒤집어진 시도가 대신하고 있다면 정작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사업은 단 한 가지도 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미 신라 때 최 치원 선생은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 유불선 삼교를 포함한다고 했다. 이 말을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 유불선 삼교의 좋은 점을 골라 하나로 모은다는 말로 알아듣는다면 그것은 절망적인 생각이다. 이 말은 우리의 고유한 정신 안에 이미 유불선 삼교의 모든 원리가 포함한다는 말이며 이 모두를 포함하고 나서도 무궁무진한 여유가 남아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한철학이 세계의 모든 사상과 철학을 포함하고도 무궁무진한 여유가 남아 있다고 세계와 역사를 향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한겨레의 철학은 한문화권의 정신을 대표한다. 한문화권은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교통과 문화와 문명의 중심지역으로서 한반도와 일본과 만주와 몽골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연안 그리고 헝가리와 터키와 발칸반도에 이르는 평원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알타이어족이 창조한 가장 오래된 문화권이다.

우리 한겨레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단지 유라시아대륙의 한 구석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겨레의 한철학은 알타이어족들이 만년간의 농경과 유목시대를 통해 유라시아대륙의 교통과 문명과 문화의 교차로에서 차곡차곡 축적한 알찬 지식을 가장 정당하게 계승하고 정당하게 대표한다.

우리는 동북아의 물류중심을 외치기 이전에 먼저 세계의 정신적 흐름의 중심을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계사를 살펴보라! 정신적 흐름의 중심과 물질적 흐름의 중심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항상 통합된 하나의 전체로써 존재해왔지 않은가?

철학이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스스로 과정이 될 때 그 과정이 안고 있는 변화變化들과 혁신革新들 안에는 인류가 지금까지 사유해온 모든 관념들을 모두 부분으로 받아들이고도 표가 나지 않을 만큼 무진장한 깊이와 넓이가 있다. 이러한 깊고도 넓은 조직으로서의 생명체 철학을 설명하는 말로 가장 알맞은 말이 한철학이라고 생각한다.



3. 집단자살과 생명의 창조력


우리나라는 오늘날 남북대립, 동서대립, 노사대립, 빈부대립, 남녀대립, 세대간의 대립 등 대립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대립하고 있다.

이 말을 한철학적 사유로 바꾸면 우리사회는 인류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폭발적인 창조력이 철철 넘치는 역동적인 사회라는 말과 같다. 한철학적 관점으로 볼 때 우리 한겨레공동체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 모든 대립과 갈등과 투쟁이 우리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경쟁력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엄청난 무지無知이다.

우리 한겨레공동체를 자기죽음으로 이끄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정치 사회 경제 등의 모든 분야의 대립과 갈등과 투쟁 속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창조력을 생명체로서의 한겨레공동체의 활동으로 이끌지 못하게 가로막아 결국 공동체를 자살로 내몰고 마는 무시무시한 무능無能이다. 우리 한겨레공동체에 고질적인 악폐가 있다면 우리 한겨레가 출발하던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긍정성의 위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우리사회의 대립과 갈등과 투쟁 안에 존재하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놓칠 수 없는 기회를 최악의 집단적 자살 상황으로 몰아가는 절망적인 타성惰性과 나태懶怠이다.

세계철학사에서 긍정성의 철학은 지난 3천년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한겨레의 신성한 풍속과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언제나 긍정성의 위력이 존재해왔다. 이 긍정성의 위력이야말로 인류전체를 자살로 내몰고 있는 부정성의 위력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따라서 우리 한겨레의 특성인 긍정성의 위력이 바탕이 된 한철학이 세계철학사에서 유일하게 조직화된 긍정성의 철학이라고 조금도 주저함 없이 말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한철학을 부정성의 철학으로 설명해온 기존의 접근방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립과 갈등과 투쟁과 전쟁의 자살논리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강력하고 폭발적인 창조적 생명에너지가 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한철학의 긍정성의 위력은 모든 부정성의 변증법에서 발생한 대립과 갈등과 투쟁과 전쟁의 집단자살 논리를 폭발적인 창조적 생명에너지로 전화해주는 능력이 있다.

우리 한겨레가 가진 이 긍정성의 변증법이야말로 우리 한겨레가 그 오랜 역사 속에서 무수한 어려움을 견디어내고 성공적으로 역사를 운영한 그 비밀스러운 방법이다.

오늘날 우리 한겨레는 물론 인류전체가 첨예한 대립과 갈등과 투쟁과 전쟁이라는 부정성의 위력과 박멸의 의지를 견디지 못하고 집단자살로 갈 것인가, 아니면 대화와 타협과 화합과 사랑과 평화와 통일을 이끌 긍정성위력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공동체를 창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즉 생명이냐 아니면 자살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한겨레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현안인 남북관계는 지난 50년간 서로 다른 외래정신으로 서로에 대해 강력한 부정성의 위력으로 대치하며 박멸의 의미를 숨기지 않았었다.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창조력 가운데 이보다 더 큰 창조력이 존재하는 곳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폭발적인 생명력이다. 남북한이 서로 가지고 있는 이 강력한 부정성의 위력을 한겨레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긍정성의 위력으로 전환시킬 때 우리는 부정성의 위력이 지배해온 삼천 년간의 세계사에서 꿈도 꾸지 못한 강력한 생명력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한겨레의 통일과 통일 후에 이루어야 할 진정한 통일은 단지 남북한 차원의 단순한 민족적 테두리의 일이 결코 아니다. 이는 삼천년이라는 세계사를 뒤로 하고 처음으로 발생하는 긍정성의 철학혁명의 주체로서 모든 분야의 대립과 갈등과 전쟁의 부정성을 긍정성의 위력으로 극복하고 생명체로서의 한겨레공동체의 창조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한겨레공동체가 이 세계사적인 성취의 절호絶好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놓칠 수 없는, 놓쳐서는 안 되는 결정적인 기회가 지금 우리 한겨레공동체의 수중에 있다. 이 가슴 벅찬 사실을 우리 한겨레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인식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가 성취하지 못할 어려움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일까?



4. 한마디의 말


생각해보면 현대 한국인들은 인식을 하든 안하든 서양과학의 세계와 어떤 형태로든 연관을 맺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서양과학 그 자체인 서양철학의 흐름에 어떤 형태로든 발맞추어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1991년 이래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와 한역 등 한겨레 고유의 정신에 대한 책을 낸 바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는 뛰어난 인재들과 특강이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들이 우리의 고유한 정신을 알려고 하는 열의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들의 내용이 너무나 난해하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필자가 전하려는 한철학의 전체적인 흐름은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필자는 그동안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경전의 세계가 현대 한국인들이 접하고 있는 과학과 철학의 세계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한 바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즉 어떻게 현대 한국인들이 필자가 제시한 한철학의 깊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한철학은 모처럼 어렵게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 보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모르고 있었지만 이것이 오래 전부터 한철학에게 주어진 기초적인 과제였던 것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시간과 노력에 달려있을 뿐이다.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었다. 그리고 한철학에서 설명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과정에 있어서 변화와 혁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도 다름 아닌 내 자신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이 일을 위해 그 이전까지 이루어내고 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바탕으로 하되 불필요한 모든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버리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막상 이 일에 뛰어든 자를 무엇보다도 어이없게 만드는 것은 이 일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질 보장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또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을 연구하는 일이 언제나 그러하듯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어디를 어떻게 가야할지 조금도 알 수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이 길은 지난 천년 이상의 세월동안 길이 아닌 길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험들 중에서 이보다 더 무모한 모험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가고 싶고 더 가야하는 길이므로 조금도 주저함 없이 그 길을 갔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제조업체 중에서 세계 제1위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연구소에서 특강을 한바있고 또 지난 2년간 그들에게 컨설팅을 해왔다. 그들이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을 그들의 전문분야에 적용하려는 열의는 남다르게 뜨거웠다.

세계 1위라는 자리는 그 분야가 어떤 것이든 남의 것을 베껴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자리이다. 때문에 세계 각국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1위 자리를 유지하는 방법은 그 경쟁자들이 갖지 못한 우리만의 경쟁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필자가 컨설팅을 한 회사의 연구원들은 세계 각국의 경쟁자들에게 없는 우리만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의 철학에서 얻어 와야 한다는 확실한 인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의 컨설팅을 통해 한철학의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그들이 개선하려는 몇 가지 공정에서 놀랄만한 효율의 상승을 가져왔다.

그것은 공학 그 자체인 과학과 과학 그 자체인 서양철학의 문제와 한계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 서양철학의 문제와 한계를 분명하게 극복할 새로운 철학이론을 제시함으로써 해결의 길이 열린다. 그런 다음 새로운 철학, 즉 한철학은 기존과학의 문제를 제거하고 또한 기존의 공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공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모든 학문에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모든 분야의 학문 그 자체가 곧 철학이라는 사실에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물론 실제로 현장에서 이와 같은 문제해결의 과정을 당사자들이 완전히 납득하여 그들의 전문분야에서 한철학의 지식과 지혜를 활용함으로써 당면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필자는 이제 1991년 이래 설명해온 한겨레 고유의 정신세계가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객관적 지식으로서의 한철학으로 전환되었다고 처음으로 말한다. 지난 삼 년간 이 말 한마디를 입 밖에 내기 전에 다른 말은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았다.



5. 상생과 상쟁


우리가 상생相生이라는 개념을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 만들어내는 이원론적 일원론의 개념으로만 보아야 할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지난 3천년간 존재해온 이원론적 일원론의 선악대립의 끔찍하도록 지루한 생명력을 다시 한번 연장해주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생相生을 상쟁相爭의 대립개념으로 본다면 그 시도는 기존의 부정성의 변증법이 주장하는 이원론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테두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상쟁相爭이라는 개념은 오래된 부정성의 변증법에 불과하다. 이 개념을 거울에 비추어 뒤집는다 해도 그것은 권력의지이며 또한 정신에 대항하는 물질의 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정성의 변증법으로서 상쟁相爭의 개념에 대항하는 상생相生의 개념이라면 그것은 상생과 상극의 이원론적 일원론에서 말하는 상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체적인 개념인 것이다. 그것은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제3의 방법론의 개념과 유사하다.

최근 우리사회에 나타나는 이러한 전체적 상생의 개념은 이들 방법론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상생의 개념은 현재로서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과도기적인 철학으로 머물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말해지는 상생의 개념이 객관적인 체계를 갖춘 과정으로서의 한철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전망해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전체적인 상생의 철학을 주도하는 주체인 한겨레의 마음속에는 이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한철학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이 현실로 발현하여 생명철학으로서의 한철학을 실현하는 실천이념이 되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라고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필자를 지나친 낙관론자라고 말할까?



6. 긍정성의 위력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이 몸에 대하여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으며 부정성의 위력으로 마음이 몸을 박멸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자살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자신의 몸이 마음에 대하여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으며 부정성의 위력으로 몸이 마음을 박멸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자살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과 몸은 둘 다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으므로 ‘너는 죽을 수도, 살을 수도 없다!’고 부르짖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이미 자살상태에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마음과 몸이 ‘너도 죽고, 나도 죽자!’라고 부르짖으며 마음과 몸 모두를 부정하고 마음과 몸 모두를 박멸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이 자살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하늘이 땅을 보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땅 위에 사는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도덕이 과학을 보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불편한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땅이 하늘을 보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하늘 아래 사는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과학이 도덕을 보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삭막한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땅과 하늘이 서로 ‘너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다!’고 한다면 그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는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과학과 도덕이 서로 ‘너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다!’고 한다면 그 혼란한 세상에서 사는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땅과 하늘이 모두 ‘너도 죽고, 나도 죽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하늘과 땅이 모두 없는 텅 빈 곳이 진실한 진리의 세계라고 부르짖으며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해야 하는가? 과학과 도덕이 모두 ‘너도 죽고, 나도 죽자!’라고 부르짖을 때 그 과학도 도덕도 모두 없는 텅 빈 곳이 진실한 진리의 세계라고 부르짖으며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해야 하는가?

이러한 자기부정의 철학과 자기죽음의 철학들에서 ‘더불어 살기’라는 한겨레의 상식이 창조하는 긍정성의 철학 생명의 철학이 조금이라도 설명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지식욕구가 호기심 수준일 때 우리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에서 벗어나 이상하고 신비로운 일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욕구가 진지하게 철학을 조직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온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들 중에는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야말로 놀랍도록 기이한 것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이다. 어느 사회의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것은 정치‧경제‧사회‧교육 등의 환경이 모든 사람들에게 ‘너 죽고, 나 살자!’를 강요함으로써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무섭고도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살은 쉽게 눈에 띄지만 집단의 자살이 감지되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긍정성의 변증법은 부정성의 위력을 긍정성의 위력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대화와 타협과 화합과 사랑과 평화의 대상이 있을 뿐 싸워야 할 적을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무적無敵철학이다. 부정성의 위력은 적이 존재할 때 내가 존재하며 악이 존재해주어야만 선이 존재할 수 있다. 긍정성의 위력은 일체 대상에 대해 평화와 사랑의 의지만 있을 뿐이다.

즉 ‘너와 나, 모두 함께 잘 살자!’가 긍정성의 철학의 바탕이다. 이 긍정성의 철학과 ‘너 죽고, 나 살자!’는 등의 부정성의 철학과의 차이는 살아 있는 생명과 죽은 생명이 가지고 있는 힘의 차이이다. 그것은 백배의 차이나 만 배의 차이로 말해질 수 없는 차이이다. 그것은 있음과 없음의 차이이며 삶과 죽음의 차이이다.

물고기의 눈을 생각해보자. 물고기의 눈은 아주 가까운 것을 보기가 어렵고 또 아주 먼 것을 보기도 어렵다. 또한 물고기의 눈이 가장 보기 어려운 것은 물이다. 그리고 물고기의 눈이 보기 불가능한 것은 물고기 자신의 눈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개인의 문제를 찾아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집단과 민족과 국가단위의 문제를 찾아내기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개인과 달리 집단 특히 민족과 국가의 문제는 상식의 궤를 벗어난 터무니없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항상 긴 시간이 흐른 다음이기 때문이다.

인류단위의 문제를 찾아내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엉뚱한 이론이 고정관념이 되어 수천 년씩이나 흘렀다 해도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 밝혀지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끝까지 발견하기 어려운 대상은 개인이나 집단 그리고 국가나 민족 또는 인류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인 것이다.



7. 삼천 년간의 집단자살


과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에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대해 존재하기 불가능한 제도라고 주장했으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불가능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오늘날은 신자유주의와 신사회주의가 그들의 선배들이 갔던 길을 다시 가고 있다.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맞서고 있는 상대방의 제도가 존재하기 불가능한 제도라고 말할 때 마치 자신이 지지하는 제도는 당연히 존재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없이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뿐 아니다. 지난 삼천 년간 수많은 이념이 대체로 이와 같은 유형의 가정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자가 사회주의자에 대해 사회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사회주의자가 그 반대로 주장하는 방식 안에 숨어 있는 위험성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방식은 집단최면이다. 이 방식은 자본주의가 홀로 존재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과연 사회주의는 홀로 존재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이들이 앞으로 홀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가? 라는 방식으로는 생각하지도 물어보지도 못하도록 집단최면을 걸어 그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정상적인 사유를 결정적으로 교란시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필자에게 그것을 묻는다면 그 이념들은 그것들 혼자서는 단 일초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절대로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신사회주의, 아나키즘, 파시즘, 국가주의, 민족주의 등 모든 이념들이 마찬가지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삼천 년간 존재한 모든 이론이 그들 혼자서는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 모든 철학이론의 세계도 더불어 살기라는 한겨레의 상식이 조직하는 긍정성의 철학이 이미 확고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삼천 년간 이렇게 사유하거나 말한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는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고 말할 것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8. 함께 만든 책


이 책의 글씨를 필자가 썼다면 이 책의 공백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이른바 글씨와 공백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긍정성의 위력이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조직된 것이다.

1991년 천부경, 삼일신고를 처음 낼 때부터 이 책들을 저자 이상으로 자신이 쓴 책처럼 아끼고 사랑해준 독자들이 있었다. 그 독자들이 있었기에 그동안 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또한 나의 마음에 힘이 되어주는 분들이 있어서 힘겨웠던 연구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중단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 책이 준비되는 동안 누군가의 결정적인 희생이 있었다면 그 희생은 주로 아내의 몫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결코 쉽지 않은 이 길을 함께 가면서 아이들을 키우며 모든 어려움을 꿋꿋하게 감내해온 아내가 없었다면 이 일은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은행의 하근철 님은 회사일로 바쁜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걸음에 달려와 교정을 보아주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우리 한겨레의 장대한 역사 속에서 축적된 지식과 지혜를 천부경, 삼일신고, 366사 등의 경전으로 다듬고 계승해온 우리 한겨레의 성인聖人들과 현철賢哲들의 음덕陰德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의인義人들이 우리 한겨레 정신의 암흑시절 동안 이 경전들을 릴레이 하듯 후세에 전했기에 이 책은 시작될 수 있었다.

한철학 시리즈에 바탕을 마련하는 대단히 중요한 내용으로 과정을 전개하면서, 이 책은 말없는 가운데 이 모든 분들의 마음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로 조직되었다. 이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단기 4337년 7월 1일

최 동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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