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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 2차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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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서문

1. 태양이 떠오르기 전의 어두움

밤이 가장 깊고 어두울 때가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이 가장 가까울 때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은 긴 세월 고난을 당하던 시기보다 오히려 지금 더 어두운 시기를 맞고 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에 관심과 사랑을 가지지 않을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 우리의 고유한 정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갈수록 더 식어만 가는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할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정신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가질 현실적인 분명한 실체로서의 이론체계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현재의 실정이 이러한데 그 뚜렷한 참모습을 설명할 수 없는 우리의 고유한 정신에 대해 어떻게 일반대중이 관심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지난 날 우리의 고유한 정신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컸던 만큼 확인할 수 있는 실체도 없는 우리의 정신에 실망한 일반대중이 갈수록 더 냉담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고유한 정신의 이론체계를 명확하게 세우고 그것이 기존의 동서고금의 정신들과 무엇이 왜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왜 필요하며 얼마나 유용한 것인가를 분명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본 경전 ‘삼일신고’는 ‘천부경’과 ‘366사’와 함께 우리 한겨레의 3대 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우리의 고유한 경전이다. 그러나 나는 삼일신고가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경전이므로 소중하다는 식으로 설명하지 않겠다. 그보다는 삼일신고가 이 시대의 일부학자들에게서 겨우 시도되는 미래의 학문인 융합학문이 추구하는 차원을 이미 수천 년 전에 뛰어 넘었음을 설명하겠다. 즉 삼일신고 안에 있는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이론체계가 지난 삼천 년간 동서양의 모든 학문을 이루는 사고의 틀을 모두 포함하면서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도 높은 차원의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겠다. 그럼으로써 현실적으로 더 할 나위 없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입증하겠다.

또한 삼일신고가 우리의 고유한 정신을 담고 있으므로 소중하다는 식으로 우리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설명하지 않겠다. 그보다는 우리가 삼일신고에 담긴 이론체계를 사용할 수 없다면, 한민족의 고유한 정신이 동서양의 다른 민족의 정신들보다 더 깊은 진리와 더 탁월한 경쟁력과 더 앞선 정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겠다.

나는 이 책을 내면서 한겨레의 순수한 정신이 이 시대에 다시금 되살아나는 의미에 대해 불필요한 감상에 빠져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그보다는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 오늘을 사는 일반대중과 기업과 국가의 실제적 활동에서 직접 적용하여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풀어서 알기 쉽게 설명하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존의 어떤 학문과 비교하여도 조금도 허술함이 없는 설득력을 갖춘 이론으로 체계를 갖추어 설명하겠다.

삼일신고는 생명은 고귀한 것이며 특히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삶은 가장 큰 축복이며 너무도 아름답다는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 사실을 철저한 이론체계를 갖추어 설명할 것이다.

이 책은 전체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전래동화와 아메리카 인디언에게 전해오는 전래 기도문 안에서 삼일신고에 담긴 가장 핵심적인 진리를 찾아내어 설명한다. 제1부의 내용만으로도 삼일신고가 오랜 세월 동안 간직해온 핵심적인 진리를 누구든 단숨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2부는 먼저 삼일신고에 내장된 이론체계를 알기 쉬운 상식적인 내용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한다. 이 과정을 통해 삼일신고의 핵심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제2부는 우리 한겨레가 보존해온 우리의 정신이 지난 삼천 년간 동서고금의 모든 신학과 철학이 해결할 수 없었던 현대문명의 근본적이고도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무속과 동학이 한신학과 하나라는 사실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제3부는 삼일신고 본문의 해석과 해설로서 삼일신고의 유래와 전래경로 그리고 삼일신고 본문의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내용을 모두 해석하고 또한 철저하게 풀어서 해설한다. 그리고 부록에는 삼일신고의 이해에 꼭 필요한 자료를 담았다.

2. 왜 삼일신고인가?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지난 날 확신으로 가득 찬 신념을 잃어버리고 마치 넓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가야할 방향을 잃은 배와 같이 당황스럽고 위태로운 처지가 되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과학은 현실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는 일에 점차 어려움을 가지게 되면서 갈수록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구적 현대문명을 지탱해주던 근본적인 신념은 20세기 이후에 일어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대해 곤경에 빠져 있다.

헤겔의 신념은 “세계사는 결국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세계의 역사 안에 계시면서 이 역사의 주인이 되신다. 악惡도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영역 안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악의 존재도 세계사를 다스리는 신의 섭리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틀러의 나치스에게 대학살을 당한 무고한 6백만의 유태인과 공산혁명으로 죽어간 수천만의 무고한 구소련인과 중국인들에게 그 세계사를 주관하는 신이 여전히 의롭고 선한 전능의 신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악惡도 신이 다스리는 영역 안에서 신의 섭리에 포함된다면 이 경천동지할 대학살이라는 악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미국의 코넬 대학교 정치학 교수 앨퍼드는 “신이 전능하다면 그런 파괴적인 현상 역시 신의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는 유대-그리스도교적 유일신 신앙의 딜레마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신이 전능하다면 우리는 신을 악惡이라 부를 수도 있다.”라고 주장한다. 유신론(有神論:Theism)이라는 서구문명의 정신적 기반을 이루던 신념은 이렇게 전 인류적 대재앙을 맞아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서양의 유신론이 이처럼 치명적인 딜레마에 빠져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그 반대편에 서서 자연이 곧 신이라고 주장하는 동양의 범신론(汎神論:Pantheism)이 인류가 맞고 있는 이 치명적인 딜레마를 해결해줄 수 있는가?

그러나 범신론의 경우 자연은 곧 신이다. 따라서 신인 자연을 중장비로 파헤치고, 폭파하여 도로와 철도를 내고, 도시를 건설하는 일은 곧 신을 죽이는 일이 된다. 또한 신인 자연의 살가죽을 뚫고 석유나 지하자원을 캐내는 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범신론자들은 입을 모아 현대인이 너무도 탐욕스럽다고 비난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자연을 개발하지 않고 어떻게 현 인류의 그 많은 사람들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굶어죽고 얼어 죽는 것이 신의 섭리인가? 이 점에 대해 범신론자들은 아무런 현실적 방법론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범신론자들은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자연을 신으로 섬기며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방법 이외에 아무런 방법론도 내세울 수 없다. 이 사실은 너무도 기이하며 또한 너무도 큰 실망을 안겨준다.

유신론과 범신론의 신은 이처럼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변명의 차원을 넘어 해결을 위한 방법론은 20세기에 와서 화이트헤드에 의해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화이트헤드가 세운 형이상학의 신은 신학자들에 의해 범재신론(汎在神論:Panentheism)으로 설명되었다.

화이트헤드는 “신은 세계를 창조하지는 않는다. 신은 세계를 구제한다.”라고 주장한다. 즉 범재신론의 신은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아니면서 인간과 세계를 구제한다. 그러므로 신을 악이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된다. 범재신론에 의하면 신은 대학살의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며, 범신론적인 무력함에도 책임이 없다. 이 범재신론은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 이는 분명 20세기에 일어난 놀랄만한 신학적 대혁명이었다.

그러나 범재신론은 단지 유신론과 범신론을 대비시키고 조화를 꾀할 뿐 이 양자를 하나로 통합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유신론과 범신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단지 어중간하고 애매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화이트헤드의 신은 세계의 시인이며, 설득하는 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세계의 시인과 설득하는 신은 현대인이 당면한 긴박하고 치명적인 문제를 달래줄 수는 있어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유신론과 범신론 그리고 화이트헤드에게서 마련된 범재신론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근본적인 방법론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나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설명하는 한신학(韓神學: Hananimlogy)이 지금까지의 모든 신론이 해결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겠다. 이 한신학이 한겨레의 고유한 경전인 삼일신고 안에 내장된 한겨레의 고유한 신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신학이 설명하는 한신론은 유신론과 범신론과 범재신론과 무엇이 어떻게 다르며 어떤 방법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가?

화이트헤드의 범재신론은 유신론과 범신론의 내용에 대비와 조화를 꾀함으로써 대학살의 문제 등에 빛을 던져준 훌륭한 것이다. 하지만 화이트헤드의 신은 양극단의 조화를 꾀할 뿐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입장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설명하는 한신론에서는 유신론의 유일신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력하고 역동적이고 새로운 의미의 전능한 창조주로 나타난다.

여기서 서구문명이 당면한 중요한 문제인 대학살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 한겨레가 당면한 고유종교/외래종교, 동/서, 남/북, 빈/부, 노/사, 남/녀, 뉴레프트/뉴라이트 등의 모든 양극단을 통합하고 통일하는 이론체계가 동시에 마련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국가를 “피억압계층을 착취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했다. 헤겔은 일찍이 그 반대로 “국가는 객관적 정신의 것”이며 “지상에 존재하는 모습으로서의 신의 이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가 설명하는 한신론에서의 국가는 사회의 모든 양극단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창조創造되는 생명체로서, 모두가 주인이 되는 살아있는 역동적인 인간 그 자체이다. 이 창조적創造的인 상태로 나라를 연 것을 우리 한겨레의 조상들은 개천開天이라고 했다. 이는 개벽開闢과도 통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범신론과 같이 자연을 신으로 본다면 인간은 자연에 대해 문자 그대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이외에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그러나 그래도 인간이 자연에서 그런대로 살만하게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손과 머리에 의해 최적화되고 성역화될 때 가능하다. 즉 자연은 농부나 어부, 목부牧夫, 광부鑛夫 등이 있어 어느 정도 낙원과 비슷해진 것이다. 한신학은 하나로 통합되고 통일된 인간의 힘으로 대자연을 성역화聖域化하여 지속가능할 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순환이 가능한 성스러운 자연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류는 환경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의식주를 완전히 해결하고 번영을 이룬다. 한신학은 현실의 의식주문제 해결에 있어서 아무런 대책을 내세우지 못하는 범신론(汎神論:Pantheism)을 완성한다.

그리고 어느 한 계급이 다른 한 계급을 증오하고 부정함으로써 노예화하여 착취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편에서 억압하는 계급을 타도하고 박멸함으로써 물질적 번영을 이루겠다는 주장 모두는 번영이 아니라 그 사회의 자살이며 자멸이다. 한신학은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사회의 모든 계급과 모든 양극단이 하나로 통합하고 통일하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어 함께 힘을 모아 자연을 성역화하여 얻어지는 번영이 진정한 번영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공동체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어 자연을 성역화하는 것을 우리 한겨레의 조상들은 재세이화在世理化라고 했다.

또한 한신학은 당면한 대학살의 문제로 상징되는 현대인이 겪는 해결이 어려운 모든 사건들은 물론 개인과 사회가 겪는 모든 사건들을 성사화聖事化하는 가장 강력한 유일신을 설명함으로써 유신론(有神論:Theism)을 완성한다. 이는 유교가 설명하는 동양적 도덕론道德論의 완성이기도 하다. 개개인이 겪는 사건이 성스럽게 될 때 그 사회는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모두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어떤 인간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모든 인간이 모두 평등해지고, 모든 인간의 모든 행동이 진실로 인간다워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전지전능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또한 이 상태에서 그 사회의 도덕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상태를 우리 한겨레의 조상들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고 했다.

과정이 진리이다. 한신론은 신이 생명의 과정 그 자체로서 창조와 새로운 의미의 전지전능을 실현해나가는 원리를 설명한다. 즉 한신론은 전능하고 역동적인 유일신과 인간이 만물을 통합하고 통일하며, 범신론과 유신론을 완성함으로써 통합과 통일문제와 인류의 의식주문제와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문제와 평등문제 등을 차례로 해결해나가는 원리를 생명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한겨레의 고유한 경전 삼일신고는 현대문명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한신학(韓神學: Hananimlogy)을 품고 오랜 세월 동안 오늘을 기다려왔다.

3. 왜 한신학인가?

종교는 여럿이지만 신은 오로지 하나일 뿐이다. 신학은 오로지 그 하나인 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여러 신관神觀으로 나누어지고 그 신관에 따라 신을 설명하는 이론체계로서의 신론神論이 있을 뿐이다.

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다면 아무리 신을 믿지 말라고 해도 믿게 된다. 그러나 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신을 무조건 그리고 무작정 믿는다면 그것은 맹신盲信이 되지 않을까? 이는 물질에 불과한 신상神像과 신전神殿이 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 신상과 신전이 비싸고 크면 클수록 더 신을 잘 섬기는 것이며 또 더 신을 잘 설명한다고 믿는 무지無知한 사람들과 신학적 문제를 나누어 떠안고 있다.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은 반드시 증명이 불가능한 신비와 기적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고 종교 상호간의 갈등과 다툼을 부르게 된다. 그러나 오로지 하나인 신을 이해하는 방법론을 다루는 신학에서는 신에 대한 학문적인 견해차이가 있을지언정 신비와 기적의 문제나 종교적 갈등과 다툼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경전인 삼일신고에서 설명되는 한신학은 어느 특정종교에 국한하는 신학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신학으로서의 성격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신학이다. 이것이 내가 한겨레의 고유한 경전인 삼일신고를 설명하며 종교적인 신념의 차원이 아니라 신학이라는 학문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모든 지식의 종착점은 신이며, 모든 지식의 시작점 또한 신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의심의 여지가 없이 명확하다. 누구나 신학의 가장 초보적인 지식만 알게 되어도 그것이 기존의 모든 학문의 가장 심원한 근원임을 당장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신학은 인간이 만든 모든 학문의 가장 상위의 학문이자 가장 깊은 뿌리를 형성하는 학문인 것이다.

한신학은 지난 삼천 년간의 모든 종교의 신론神論을 다섯 가지로 크게 구분한다. 즉 유신론과 범신론과 범재신론과 공사상과 우리 한겨레의 한신론(韓神論:Hananimism)이다. 삼일신고가 설명하는 한신학은 기존의 네 가지의 신론은 물론 다른 여러 신론을 모두 포함하면서 이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다섯 번째의 신론을 설명한다. 삼일신고에 내장된 한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나아가 기존의 네 가지 신론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학문의 학문이 철학이며 모든 철학의 철학이 신학이다. 그리고 나는 모든 신학의 신학이 우리 한겨레의 한신학이라고 주장한다.

4. 관측과 사유에서 실험으로

고대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열정적인 천문학자들이었다. 그들은 그 많은 하늘의 별들에게 모두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념을 부여하고 이름을 만들어 사용했다.

특히 그들은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우주 전체의 중심이 되는 부동의 원동자인 북극성을 중심으로 우주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천체물리학적 사실을 관측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그 북극성의 개념을 유일신이라고 설정하여 우주와 인간의 근원으로 생각했다. 고대인들의 관측 신학은 동서양의 신화에 잘 나타나 있다.

고대인들이 관측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신의 개념을 만들고 그것으로 신화를 만들었다면,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신화를 토대로 사유를 하여 부동의 원동자인 신에 대한 학문으로 신학(Theology)을 만들어냈다. 그의 신학은 그후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 의해 서양의 신학의 중요한 원리로 자리 잡게 된다. 이들의 신학의 특징은 사유를 통한 이론체계의 정립이었다.

그러나 경험의 영역에서의 뒷받침이 없는 사유는 항상 독단으로 흐르기 마련인 것이다. 우리 한겨레의 신학은 처음부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시작했다. 즉 실험을 통해 경험과 사유를 통합하는 신학이 그것이다.

그 예가 이 삼일신고를 기리는 글(御製贊)을 쓴 발해의 창업자 대조영님(?~719)의 글에 나타나 있다. 본문에서 전체를 설명하겠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질그릇 만드는 사람이 질그릇 선반의 중심에 따라

질그릇을 만들듯 만드셨으니,

하늘의 별들을 그물눈같이

장원하고 광원하게 짜셨느니라.

대우주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과 질그릇을 만드는 선반의 중심축으로 질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은 동일한 원리이다. 대조영님은 이 논리를 정확하게 인식하며 그 중심의 북극성을 하나님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대조영님은 관측이나 사유가 아니라 우주전체를 모형화하여 직접 그 작동원리를 실험해보고 그 실험결과를 사유하여 신학과 철학의 이론체계를 이해하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대조영님의 실험신학적 방법론을 그분이 창안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이며 고구려는 우리의 고대국가인 고조선과 배달국 그리고 한국桓國을 계승한 적통국가를 자임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신학과 철학의 이론체계를 세우는 이 실험신학은 우리 한겨레 고대국가의 전통적 방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믿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즉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에 적용된 이론체계는 고대인의 천체관측이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같은 추상적인 사유만으로는 만들어지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 규모가 광대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철학과 신학을 담고도 무궁무진한 여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론체계는 너무도 철저하고 섬세하여 동서고금에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해의 창업자 대조영님이 계승한 모형실험방식을 이 시대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그 실험 방법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다시 실험한 다음 그 내용을 현대적인 신학체계로 설명해야 비로소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조영님이 사용한 모형실험을 통한 방법을 사용하되 현대 한국의 세계적인 기업 활동의 참여를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실험했다. 그럼으로써 한겨레의 실험신학의 전통을 계승하되 이 시대에 알맞은 이론체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사현장에서의 실험이며 두 번째가 대기업 연구소의 실험실에서의 실험이었다. 본문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두 실험은 모두 큰 성공을 이루면서 나에게 소중한 기회를 준 기업에게 보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회를 신학과 철학의 실험으로 활용했다.

이 실험을 위해 4~5년 걸린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건설공사는 엄청난 인력과 장비와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2년 이상 걸린 대기업 연구소의 실험도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학자들과 세계최고의 실험장비와 시설이 필요했다. 이 일에도 막대한 비용이 든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플라톤 이래 지난 2500년간 서양의 그 어느 신학대학과 대학교의 철학과에서도 신학과 철학을 실험을 통해 설명을 하겠다고 발상의 대전환을 일으켜 그것을 실행한 대학은 없었다. 물론 동양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혹 앞으로 실험을 하고 싶은 곳이 있다 해도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며 실험을 할 신학대학이나 대학교의 철학과는 전 세계의 그 어느 나라에도 있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이 같은 실험들을 일부러 의도한 적은 없었다. 이 거대한 실험들은 나의 삶의 과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그럼으로써 발해의 시조 대조영님 이래 1300년 이상 끊어졌던 한겨레의 실험 신학적 전통이 이 시대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5. 생각하는 기초적인 틀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선악善惡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언제나 당황한다. 왜냐하면 니체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는 선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악이 무엇인가라는 의문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의문은 왜 이 세상 모든 것을 둘로 분리시켜버리는 선악이라는 이원론적 기준만이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이다. 이는 가장 근본적인 의문이지만 아직 누구도 제기하지 않고 있다.

이 시대의 대부분의 문제가 이원론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새로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원론의 문제는 이원론적인 사고의 틀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자신의 손에 쥔 칼의 칼날로 그 칼의 칼자루나 칼등을 자르려고 하는 어리석음과 같다.

특히 이 시대는 국내외적으로 이원론적 방법론으로 이원론을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일을 도처에서 흔하게 보게 된다. 그리고 서양의 이원론이 우리 한겨레의 사회 안에서 만들어낸 비극 중에서도 가장 슬픈 비극은 한국 및 동양 정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원론을 사용하여 이원론을 공격할 때이다. 이 이원론의 문제는 본문에서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자유와 의지와 자유의지에 대해 알기라도 하는 것 같이 여기고 있다. 또한 이성과 지성과 인간성에 대해도 마찬가지로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여섯 가지를 구분해서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신학자나 철학자는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없었다. 이 여섯 가지가 분명히 설명되지 않는 상태에서 생각하는 기본적인 틀이 어떻게 마련될 수 있는가? 이 부분도 본문에서 설명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는 아직까지 인간을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기준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이같이 가장 근본적인 정신적 바탕에 대해 거의 아무런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다른 지엽말단의 문제에 대해 아무리 많은 노력을 쏟는다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이제 모든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즉 인류에게 당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모든 학문의 학문인 신학과 철학에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먼저 확립하여 인류의 기본적인 영역에 확신을 가지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나라가 장차 인류를 이끄는 지도적 국가가 되는 것이다.

6. 대한민국의 국력과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

우리의 한겨레에게 고유한 정신이 없다고 하면서 외래정신이 우리의 고유한 정신이라고 한다면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의 핵심은 우리의 한겨레의 고유한 신학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겨레에게 고유한 신학이 없다고 하면서 외래신학이 우리의 고유한 신학이라고 한다면 그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먼저 A를 우리의 고유한 신학이라고 하고 B를 기존의 외래신학이라고 하자. 누구든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신학을 언급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A인 우리의 고유한 신학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그 A로 B인 외래신학의 이론체계와 비교함으로써 한겨레의 신학이 어떤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겨레의 신학이 세계신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도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A인 우리 한겨레 신학의 이론체계를 우리 한겨레의 신학의 입장에서 언제 누가 어떻게 설명했던가? 나는 아직까지 A인 한겨레의 고유한 신학이론을 세워 그것으로 B인 외래신학인 유신론과 범신론 그리고 미국의 화이트헤드의 범재신론과 인도의 나가르주나의 공사상과 비교해서 무엇이 어떻게 왜 다르다고 설명한 학자가 우리나라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 국내외의 학자들은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신학이 기존의 유신론과 범신론과 범재신론과 공사상이라고 각각 번갈아가며 규정해왔다. 결국 그분들에 의해 지난 100년간 A인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신학의 독자적인 영역은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B인 외래신학이 B인 외래신학이라고 말할 뿐 그 안에 A인 우리 한겨레만의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신학의 이론체계가 차지할 공간은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 한겨레만의 독자적인 신학이 없고 이들 외래신학이 정말로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신학이라면 더 이상 이 문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 경우 그분들이 주장하는 외래신학의 신론 중 하나를 우리 한겨레의 신론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모든 일은 종결된다. 사실상 지금까지 이 문제는 그렇게 종결된 상태이다.

하지만 신학에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설명할 수 없다면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의 독자적인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연 그런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100년 간 한겨레 고유의 정신의 핵심을 결정하는 이 막중한 문제에서 우리의 정신은 함부로 다루어지고 참담하게 무시되고 왜곡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본 모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결정적으로 방해하고 착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단순하게 의문과 반론을 제기하거나, 목청 높여 비난만 하는 소극적인 입장에 서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그와 같은 수동적이고 나약한 방식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근본적인 신학의 차원에서 우리의 한겨레의 고유한 신론에 대한 이론체계를 분명히 세워 제시하며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한신론과 기존의 유신론과 범신론 그리고 범재신론과 공사상과 여러 방향에서 다양한 관점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철두철미하게 비교하고 검토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한신론이 기존의 신론들과 무엇이 어떻게 왜 그리고 얼마나 탁월하며 또한 다른가를 하나하나 분명하게 밝혀내어 설명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신학이 지금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즉 20세기에 들어서 미국의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서양 사회를 지배하던 유신론의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하고 그것을 대체할 범재신론을 내세우는 신학의 대혁명을 일으켰다. 미국인들은 전성기의 영국과 프랑스가 해내지 못한 신학적 대혁명을 단 시일 안에 거뜬히 이루어낸 것이다.

이 일의 중심이었던 화이트헤드는 영국인이지만 미국에 건너가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이 의미심장한 일을 해낸 것이다. 결국 미국은 영국 나아가 유럽의 정신적인 힘을 품고 있는 탁월한 철학자 단 한 명을 미국으로 유치함으로써 이 일을 성공할 수 있는 계기를 잡았다. 나는 이 일이 20세기에 있어서 미국의 국력이 어떤 것이었나를 잘 보여주는 대단히 놀라운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 21세기의 대한민국의 국력은 미국이 만들어낸 범재신론을 능가할 새로운 신론을 제시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구한말의 무기력했던 시절이나, 6·25의 잿더미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던 그 대한민국이 아니다. 전 세계와 모든 분야에서 당당히 경쟁하며 여러 분야에서 떳떳하게 승리하는 알차고 역동적인 나라이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전 세계의 모든 신론을 통합하고 통일하면서 기존의 신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완성하는 새로운 신론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은 이미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바로 이 신학이 한겨레의 삼대경전인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에 공통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독자적이고도 창조적인 이론체계로써 특히 삼일신고에서 설명하는 한신학(韓神學:Hananimlogy)이며 그 신론이 한신론(韓神論:Hananimism)이다.

7. 정신산업이 한겨레의 미래를 먹여 살린다!

오늘날 우리는 미래의 산업으로 IT산업(정보통신산업)과 BT산업(생명공학산업), NT산업(극세기술산업) 등을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땅도 좁고 자원도 없는 우리 한겨레에게 필요한 만큼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며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산업이 정신산업精神産業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유럽문명이 세계를 이끌 때 그들에게는 유신론이 있었다. 미국문명이 세계를 이끌 때 그들은 유럽인이 내세우지 못한 범재신론을 확립했다. 그러나 일본이 세계를 이끌 수 있을 때 그들은 정신적으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내세우지 못했다. 중국의 경우 일본보다 신학의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한겨레는 일본과 중국보다 못한 점도 물론 많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산업에 있어서만은 그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정신산업의 바탕은 한중일 삼국의 공통적인 정신적 근본을 설명하는 한겨레의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에 내장된 한신학이다. 다행스럽게도 중국과 일본은 모두 자신의 정신적 근본이 이 경전들과 한신학에 있는지를 아직 알지 못한다. 서양인은 물론 인도는 이러한 신학을 만들 수 있는 정신적·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 역시 그동안 세계에 내세울 만한 우리만의 신학의 이론체계를 갖추지 못했었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의 무속과 민족종교들 중에는 유신론과 범신론과 범재신론과 공사상 중 하나를 마치 우리의 고유한 신학처럼 모범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왔다. 이는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한신학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삼일신고를 읽은 기독교인들이 삼일신고의 내용이 바이블과 비슷하다는 점에 놀라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내가 보기에도 바이블에 담긴 신론은 고대 그리스와 중세유럽의 유신론이나 미국의 화이트헤드의 범재신론보다는 한신학의 생명의 과정이론으로 설명할 때 비로소 그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알기 쉬운 예는 본문에서 설명하기에 가장 쉽고 편리한 부분에서 설명했다. 한신학은 유신론의 유일신이 보다 강화되면서도 범재신론의 어중간한 입장의 문제를 극복하여 범신론의 유약한 점과 대학살과 같은 유신론적 문제를 해결한다. 이 점은 모든 유신론을 신봉하는 종교에서 바라마지 않던 신학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한겨레의 한신론은 유불선에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겨레공동체 안의 유불선은 지금도 이미 한겨레의 창조적인 유불선으로 거듭나 세계 유불선의 중요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의 한신학의 분명한 이론체계를 활용할 때 유불선의 발상지에서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의 새로운 유불선의 모습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한신학은 광대무변하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또한 무엇보다 역동적인 신학이다. 따라서 한신학은 한겨레 공동체 안에서 외래정신이 고유의 정신을 적대시하거나, 우리의 고유의 정신이 외래정신을 적대시하거나, 외래정신이 외래정신을 적대시하는 서양식 이원론적 대립과 갈등의 상태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겨레의 한신학은 우리 한겨레는 물론 인류를 집단자살로 몰고 가는 이 이원론적 대립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생명의 과정을 창조하는 신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신학의 중심인 한겨레의 하나님/하느님 그리고 단군의 이름으로 다른 종교나 집단을 적대시하며 공동체를 분열시켜 자신들의 이기적인 세력확장만을 획책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한겨레의 고유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이든 외래정신을 따르는 사람이든 그들은 하나님/하느님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하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단군님과 한겨레의 고유의 정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한신학이 설명하는 정신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교할 때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정신산업이 장차 우리 한겨레에게 안겨줄 유형과 무형의 이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할 것이다. 우리 한겨레가 전 인류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깊은 존경을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정신산업이야말로 장차 우리 한겨레가 먹고살 수 있는 강력한 산업으로 우리 한겨레가 최종적으로 의지해야 할 산업인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한겨레의 젊은이들이야말로 이 일을 현실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꿈의 세대들인 것이다. 과연 우리 한겨레가 언제 지금과 같은 절호의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으며, 장차 언제 또 지금과 같은 더 없이 좋은 기회를 다시 맞을 수 있겠는가?

8. 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이 책을 마치면서 그동안을 회고해보면 삼일신고는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경전이었다. 삼일신고에서 명문화된 하나님一神은 ‘The One’ 그리고 ‘일자一者’를 그대로 신의 이름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이 하나님은 신학과 철학 그리고 종교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오랜 세월 집중해왔다. 1991년 삼일신고 초판에서는 처음으로 삼일신고의 일신一神을 하나님으로 번역했고, 1998년부터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에서 하나님닷컴(hananim.com)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2000년 삼일신고 개정판에서는 신학에 이르는 이론체계의 바탕을 마련했다. 그리고 2009년 이 책 삼일신고 2차 개정판에서는 한신학의 이론체계를 확립하여 제시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진리의 세계에서는 한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했을 때 겨우 한번에 하나의 단계씩을 극복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차례차례 올라설 수 있다.

생각해보면 국가가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을 계승하고 책임지고 관리했던 한겨레의 마지막 국가였던 발해 이후 오늘까지 우리 한겨레의 고유의 정신을 밝히는 일은 여러 외래정신들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하다. 하지만 나는 최악의 조건 속에 항상 최선의 기회가 있음을 안다. 최악의 조건과 고난을 피해 편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최선의 기회도 피해서 도망간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그리고 단군님께서 전해주신 경전들과 신학과 철학과 사상은 한 때 유행처럼 나타나고 사라지는 일시적인 영역이 아니라 한겨레가 존속하는 한 계속되는 영속적인 영역을 가진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는 잠시 자신을 속일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오랫동안 세상을 속일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천재天才인 척하는 허풍쟁이들과 초인超人인 척하는 야바꾼들은 단군님께서 전해주신 진리를 도구로 사용하여 사리사욕을 위장하려고 한다. 그들은 거짓을 진실로 꾸미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속여 대중의 희망을 빼앗아가거나, 남의 지식을 자기 지식처럼 눈속임하여 헛된 욕망을 위한 일에 악용한다.

그들은 자신이 한겨레의 신성한 정신과 준엄한 역사라는 밝고 거대한 횃불에 겁 없이 달려드는 불나방과 같은 신세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탐욕과 어리석음이라는 무서운 도끼로 자신의 발등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내려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내는 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을 소개할 수 있음은 나에게는 기쁨이다. 김종호 선생은 연세가 여든을 바라보는 분으로서 평생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해 진실하게 하나님을 섬겨온 분이다. 선생께서는 1980년에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서원을 세우셨다고 한다. 그 후 선생은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하나님 일을 열심히 하는 분들을 찾아 많은 곳을 다니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내가 발간한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의 해설서를 읽어보시고 평생 동안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풀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를 어렵게 찾아오셨고, 선생 부부는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을 새롭게 밝히고 한겨레의 철학과 신학을 올바로 세우는 사업에 최선을 다해 참여해주셨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이 책 삼일신고의 2차 개정판에는 선생께서 세우셨던 그 진실한 서원이 구석구석에 서려 있다. 또한 오래 전부터 함께 정성을 드려주셨던 고 이돈희 여사의 마음도 함께 서려있다.

그리고 이근숙 시인의 소중한 정성은 이 책을 쓰는 동안 내내 도움이 되었다. 또한 강성경 선생과 강병해 님은 정성으로 이 일에 참여해왔다. 대구 단군성전의 시봉 박명수 할머니, 그리고 권영희 님, 신학식 님, 김백곤 선생은 귀한 마음을 보내왔다.

그동안 이 책 삼일신고 2차 개정판이 나오기까지의 일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과 또 이 책을 읽은 독자님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독자님 모두와 그 모든 분들의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고 이루려는 소망이 모두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2009년 4월에

최 동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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