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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예수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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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단군과 예수의 대화

 

저자서문

 

 

1. 단군과 예수의 만남

 

우리 한겨레가 역동적인 역사를 이끌어 오면서 창조해 낸 한겨레 문명의 상징이 단군이라면, 지난 수백 년간 세계를 이끌어 온 서양 기독교 문명의 상징은 예수가 될 것이다.

또한 지금 이 시대는 세계의 중심이 동북아로 이동하고 있는 역사적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또한 지금까지 세계를 이끌어 온 서양 문명의 중심을 정확히 알아야 새롭게 전개되는 동북아 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단군과 예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매우 상황이 좋지 않아 뜻 있는 많은 사람들을 걱정하게 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단군과 예수의 갈등과 대립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벌어지는 양극단兩極端의 분열과 파괴의 문제이기도 하다.

즉 우리 사회는 남/북, 동/서, 좌/우, 노/사, 남/녀 등의 양극단兩極端으로 분열하여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고 파괴하면서 위기상태를 만들고 있다. 이 양극단이 분열하고 대립하는 갈등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기본적으로 자살적인 이원론의 공통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 형식은 자기편은 선이고 상대편은 적으로서 악이라는 결론을 미리 확정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적이며 악으로 설정된 상대방을 모욕하고 파괴하는 일이 마치 정의正義를 실현하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마음이 몸을 죽이려 하고, 몸이 마음을 죽이려 한다면 그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인 한겨레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립하는 상대방을 파괴하고 모욕한다면, 한겨레 공동체는 더 이상 정상적인 생명체로서 살아 숨 쉬며 역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한겨레 문명의 상징인 단군과 서양 기독교 문명의 상징인 예수의 갈등 문제는 이 자살적 이원론이 만들어 낸 많은 문제 중 가장 대표적이고도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이 단군과 예수의 갈등 문제는 다른 이원론적 문제들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왜냐하면 단군과 예수의 공통적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 바로 이 이원론이 만드는 악순환을 제거하고 양극단을 통합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단군과 예수 두 분 중 어느 분의 진리를 따르든 참다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단군과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을 확인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정말로 단군과 예수의 가르침이 자살적인 이원론이 만들어 내는 악순환을 종식시키고 양극단을 통합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단군과 예수의 기본 진리가 양극단兩極端의 통합임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단군과 예수의 갈등 문제는 물론이며 나아가 우리 한겨레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남북통일과 동서 화합 그리고 좌/우, 노/사, 남/녀 등의 갈등 문제를 우리 한겨레의 능력으로 이 시대에 명쾌하게 해결하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단군님과 예수님에 대해 신학적으로 접근한다. 그 과정에서 두 분을 많이 거명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 경우 오히려 더 어색하고 거북할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두 분의 존칭을 생략한다. 이 점에 대해 독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2. 우리가 과연 예수를 알고 있는가?

 

나는 지난 2,000년간 신神을 학문적으로 설명한 기독교 신학자들의 신학 이론들을 연구하면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점을 발견하였다.

기독교基督敎는 그리스도교(Christianity)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신학은 반드시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씀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난 2,000년간 기독교 신학사에는 예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틸리히(Paul Tillich)는 서양에는,

 

세 사람의 위대한 철학자가 있었고, 세 가지 위대한 기독교 집단이 있다. 그리스 정교회, 여기 철학자의 이름은 플라톤이다. 로마 가톨릭, 여기 철학자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다. 프로테스탄트, 여기 철학자의 이름은 칸트이다.

 

고 했다. 복음서의 말씀에 담긴 예수의 철학을 A라 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을 B라고 하자. 이 A=B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A인 예수의 철학이 복음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설명된 다음 B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을 설명하고 이 A와 B를 비교 검토하여 하나로 합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철학의 이론 체계에서 신학의 이론 체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간 복음서의 말씀에 담긴 A인 예수의 철학을 체계화한 신학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그리고 근본적인 의문이지만 틸리히가 언급한 B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이 기독교의 신학을 형성한 것이 과연 이치에 부합되는 일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기독교의 철학과 신학은 그 종파가 무엇이든 4대 복음서인 마가, 누가, 마태, 요한복음서에 존재하는 예수의 말씀이 바탕이 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일이 아니었을까?

만일 기독교 성경聖經 안의 4대 복음서에서 설명되는 예수의 철학과 신학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과 동등하거나 그보다 못하다면 지금까지의 방식은 지속될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4대 복음서 안에 담긴 예수의 철학과 신학이 이들 철학자들보다 상상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월등하게 높고 광대하고 또한 이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자와 신학자들의 이론과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때도 정당성이 확보되는가?

이 시대는 이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철학에 결함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양극단을 분열시키는 이원론과 양극단을 통합하지 못하고 대립시키는 문제가 그것이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서양철학에서 해결하지 못한 까다로운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들 철학자들이 기독교철학을 대표함으로써 이들의 철학이 가진 모든 이론적 결함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모두 예수의 탓으로 돌려지지 않겠는가? 그 경우는 예수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며 치명적으로 부당한 대우가 되지 않겠는가?

과연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예수가 진정한 예수인가? 우리가 과연 복음서에 담겨있는 철학과 신학이 말하는 예수의 참모습을 알고 있는가?

 

 

3. 한겨레공동체와 예수

 

이제 4대 복음서의 말씀에 담긴 예수의 철학과 신학이 무시되고 왜곡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의 시각을 우리 한겨레공동체 안으로 돌려 생각해 보자. 내가 관심을 갖는 문제의 핵심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 한겨레 공동체 안에서의 예수이다. 즉 우리 한겨레 공동체 안에서 예수의 철학과 신학이 양극단을 분열시켜 서로를 파괴하는 이원론으로 오해될 때 그 치명적인 피해를 과연 누가 책임지는가?

기독교를 우리 한겨레에게 전해준 서양 기독교 문명권이 책임지는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 한겨레 공동체 안에서 예수의 철학과 신학이 이원론으로 오해됨으로 발생하는 모든 피해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바로 우리 한겨레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100%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한겨레 공동체 안에 기독교가 들어와 한 식구가 된 이상 이 문제는 결코 기독교인들만의 문제일 수 없다. 이 문제는 명백하게도 우리 한겨레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겨레라면 그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우리 한겨레는 서구 문명이 만든 질서에 적응하여 생존해야 하는 전환기의 시점에 서구 기독교 문명의 핵심인 기독교를 우리 한겨레의 식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한겨레는 과거와는 다르다. 이 시대의 한겨레는 이미 서구 문명에 충분히 적응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 한겨레의 생존과 번영은 모든 분야에서 서구 문명보다 앞서 나가는 일에 달려 있다.

이 일에는 서구 문명에게는 없고 우리에게만 있으며 동서양 철학과 신학의 결함을 극복하는 한겨레 문명의 중심인 단군의 진리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된다. 한겨레가 이 시대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단군과 예수의 진리가 모두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단군과 예수의 만남과 대화를 이루어 단군과 예수의 갈등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의 다른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우리 한겨레가 크게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면 단군과 예수의 참다운 모습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고 감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두 분은 모두 명백하게도 대립과 갈등의 쌍방이 함께 통합하여 크게 하나가 됨으로써 생명의 과정을 진행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군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의 참모습을 존중하고 알리며,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단군의 참모습을 존중하고 알리는 것이 단군과 예수의 진리를 따르는 참다운 길이라 믿는다. 나는 이와 같은 바탕 위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예수의 참모습을 이 책에서 밝혀내어 알릴 것이다.

 

 

4. 참다운 예수의 진리란 무엇인가?

 

참다운 예수의 진리를 어디서 가져올 수 있겠는가? 당연하게도 예수의 진리를 가져올 곳은 기독교 성경의 4대 복음서인 마가, 누가, 마태, 요한복음서이다. 도마복음서 등 여러 다른 자료들도 있지만 결국 예수의 진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자료는 역시 4대 복음서이다.

먼저 결과부터 알아보자. 이 4대 복음서에서 무엇이 찾아지는가? 그것은 동서고금의 철학과 신학이 도달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사고의 틀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낸 사고의 틀은 단지 네 가지뿐 이다. 간단히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마음이 사물을 따르든가, 사물이 마음을 따르든가, 그렇지 않으면 사물과 마음 사이에 신비스러운 일치를 가정하든가 이 양극단을 모두 파괴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씀이 설명하는 철학과 신학은 이 네 가지의 사고의 틀의 한계를 극복하고 생명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음을 설명할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에게 존재한 기본적인 사고의 틀들은 대체로 실생활을 통한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사유를 통해 만들어진 사변적思辨的인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보여지는 예수의 생애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피와 땀과 눈물로 범벅을 이루는 더할 나위 없이 치열한 생명의 과정이 아니었던가?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복음서의 말씀은 결코 사변적이 아니다.

그리고 한철학(韓哲學 : Hanphilosophy)과 한신학(韓神學 : Hananimlogy)의 의 바탕인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는 우리 한겨레가 한겨레이기 시작한 이래 장대하고 역동적인 역사를 살아오며 창조되고 축적된 실제적인 경험과 탁월한 생명의 과정적 지혜가 집약된 것이다. 이는 사변과 무관하다.

나는 4대 복음서 안에 담긴 예수의 말씀들이 이 한철학과 한신학의 생명의 과정적 이론 체계로 설명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같이 새로운 생명의 과정을 설명하는 철학과 신학으로 체계화되어 설명되는 예수의 진리는 20세기에 일어난 신학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즉 히틀러의 나치스에 의해 무고한 6백만 명의 유태인이 대량 학살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구소련과 중국, 그리고 캄보디아 등에서 공산 혁명으로 수천만이 죽었다.

이 사건들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설명하는가 하는 문제는 신학이 생긴 이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되었다. 현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없는 신학은 이미 생명을 잃은 신학이기 때문이다.

이 전대미문의 엄청난 대량 학살이 일어난 것은 꿈이나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현실이 일어난 세계사를 주관하는 신이 과연 의롭고 선하며 전지전능한 신인가?

신정론神正論에 의하면 악惡도 신이 다스리는 영역 안에서 신의 섭리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대량 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악大惡을 누가 어떻게 신학적 이론체계로 설명할 것인가?

이에 대한 반응은 당연하지만 비관적인 것이다. 미국의 코넬대학교 정치학 교수 앨퍼드는, “신이 전능하다면 그런 파괴적인 현상 역시 신의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는 유대―그리스도교적 유일신 신앙의 딜레마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신이 전능하다면 우리는 신을 악惡이라 부를 수도 있다.”라고 주장한다.

당연하지만 그 누구도 이 대악大惡을 신학적 이론체계로 명백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신론(有神論 : Theism)이라는 서구 문명의 정신적 기반을 이루던 신학이론은 마침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서구의 학자들은 이 무서운 대악大惡을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다른 대안이 무엇인가에 골몰하게 된다. 자연히 그들의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동양의 범신론이다.

유신론의 반대편에 서서 자연이 곧 신이라고 주장하는 동양의 범신론(汎神論 : Pantheism)이 궁지에 빠진 신학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동양의 범신론은 자연이 신이므로 자연을 건드릴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의 의식주를 해결할 것인가?

이 유신론과 범신론의 문제를 넘어가는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인 사람은 미국의 20세기 최대의 형이상학자 화이트헤드이다. 화이트헤드가 세운 형이상학적인 신은 신학자들에 의해 범재신론(汎在神論 : Panentheism)으로 설명되었다.

화이트헤드는 유신론의 신이 가진 치명적인 문제인 전지전능을 피해 가면서 인간과 세계를 구제한다. 즉 그는, “신은 세계를 창조하지는 않는다. 신은 세계를 구제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한 대량 학살과 연관하여 더 이상 신을 악이라고 규정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범신론의 무력함에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범재신론의 신은 대량 학살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아도 되지만 유신론과 범신론 사이에서 어중간하면서도 애매모호한 균형을 유지할 뿐이다. 그리고 창조하지 못하는 신이 과연 신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화이트헤드의 신은 세계의 시인이며, 설득하는 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시인의 마음과 설득만으로 해결되기에는 너무도 긴박하고 치명적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신학의 영역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전망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즉 나는 4대 복음서 안에 담긴 예수의 말씀에서 유신론과 범신론, 그리고 범재신론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생명의 과정을 찾아낼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한신학(韓神學 : Hananimism)의 신神은 유신론과 범신론을 완성한다. 그리고 한신학의 신은 유신론의 유일신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력하고 역동적이고 새로운 의미의 전능한 창조주로 나타난다.

그리고 한신학의 신은 환경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의식주를 완전히 해결하고 번영을 이룬다. 한신학의 신은 현실의 의식주 문제 해결에 있어서 아무런 대책을 내세우지 못하는 범신론(汎神論 : Pantheism)을 완성한다.

나는 이 책에서 4대 복음서 안에 담긴 예수의 말씀이 이와 같은 한신학의 생명의 과정 이론 체계와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지난 2,000년간 철학과 신학의 영역에서 전혀 없었던 새로운 생명의 과정적 사고의 틀로 새롭게 예수를 보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설명되는 예수의 진리가 참다운 예수의 진리라고 확신한다.

 

 

5. 그리스도는 신화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인 불트만은, “선교되는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신앙과 예배의 대상인 그리스도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리스도 신화’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또한, “복음서는 결국 교리사와 예배사의 산물인 것이다.”라고 마지막 매듭을 짓는다.

그런가 하면 이 같은 불트만의 신학은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대중들이, “여러 신이 아니라 하나의 신을 믿었고, 그 신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 신의 화신인 신인神人의 이름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리시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 로마 시대에서는 바쿠스나 미트라스 등으로 불렸다.” 그리고 이들 신인神人의 신화와 예수의 이야기가 똑같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크리스마스, 십자가, 부활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신화라는 주장이 성립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트만은 기독교 신학의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저서 󰡔공관복음 전승사󰡕에서 복음서의 예수의 복음을 양식에 따라 철두철미하게 그 진정성을 따졌다. 그 결과 그동안 생각해 온 것과는 달리 예수의 복음 중 진정성을 확신할 내용은 많지 않았다.

불트만은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인 마가, 누가, 마태복음서의 내용들이 구약과 유대교, 그리고 그리스의 밀교와 영지주의 또한 당시의 격언과 속담과 잠언, 민요 등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나는 불트만의 진정한 의도가 복음서를 포장하고 있는 신화론적인 언어의 문제를 제거하고 현대인이 정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알 수 없는 범위를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추적하여 아는 범위를 최대한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할 일이 아닌가? 우리가 아는 범위를 부단히 넓혀 나가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우리 인간 스스로가 스스로를 모독하고 파괴하는 맹신과 미신과 주술과 신비주의의 함정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서의 일점일획도 문제될 것이 없이 완전하다고 믿는 문자주의자들 중에는 불트만의 작업이 기독교의 교리를 훼손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이같이 복음서를 경직된 관점으로 보거나, 복음서를 아예 신화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복음서의 진정한 의미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에 대해 복음서의 말씀은 이렇게 정곡을 찌르는 아름다운 비유로 말했다.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 23:24).

 

복음서를 신화로 받아들이거나, 복음서를 문자주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복음서 전체에서 단지 하루살이와 같은 지엽 말단의 것밖에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낙타로 비유되는 복음서 전체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흐름을 전혀 읽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불트만은 신학자로서 대단히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자가 반드시 알아야만 했던 4대 복음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를 읽어 내지 못했다. 즉 종교에 있어서 그 진수眞髓가 신화와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것은 결코 배제와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종교의 신화와 상징 속 깊은 곳에 담겨 있는 진리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철학과 신학의 이론 체계로 전환시키는 일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종교가 가진 참다운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납득시키는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6. 우리는 단군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생각 해보면 유불선儒佛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토착화됨으로써 우리 한겨레 문화는 더욱더 다양해졌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에 토착화된 유불선이 장차 유불선을 우리에게 전해준 지역의 유불선보다 더 훌륭한 유불선이 되어 소중한 한겨레의 자부심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 한겨레가 장대하고 역동적인 역사를 운영하며 창조하고 발전시켜 온 단군으로 상징되는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을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거나 우리 한겨레에게서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되고도 우리 한겨레가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한겨레라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 한겨레는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에게 무엇보다 먼저 우리 한겨레문명의 상징인 단군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간단하게나마 유불선을 살펴보며 이 문제를 생각해 보자.

조선 시대의 여러 왕들은 단군檀君을 제사 지내고 마리산 참성단을 수축하고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서 제사 지내고 이를 수축하였다. 또한 평양의 숭령전崇靈殿에서 단군을 제사 지냈다. 또한 여러 관청에는 부군당府君堂과 모든 고을에는 성황당城隍堂이 있어 제사” 지냈다.

하지만 유교를 표방한 조선에서 아무리 단군을 성심껏 모시고 고유의 정신과 친밀함을 가졌다 해도 유교에서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을 상징하는 단군과 홍익인간과 하나님을 찾을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불교는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한겨레의 대중과 대단히 친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절에 산신각山神閣과 칠성각七星閣, 삼성각三聖閣 등이 있게 되었다. 이는 모두 우리나라의 고유한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가 아무리 한겨레의 대중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었다고 해서 단군과 홍익인간과 하나님의 진리를 불교에서 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도교道敎는 주로 수련도교修鍊道敎로서 단학丹學과 선도仙道, 단丹 등으로 불린다. 즉 단학丹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성취하려 하는 희망을 성취하려는 중국의 옛 신앙에서 발달한 도교의 일파이다. 단학丹學은 주로 장생불사長生不死를 구현하려는 한 학파로서 특히 이러한 도교를 수련도교修鍊道敎라고 한다. 이 수련도교는 도교 중에서 개인의 건강과 장생을 합리적이고 실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수련도교로 불리는 단학과 선도는 중국에서 들어와 우리나라에서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한겨레에게 유교와 불교 못지않게 친근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토착화된 수련도교 중에서 일부는 단군을 수련도교의 인물로 차용借用했다. 즉 조선의 명종․선조 때 조여적趙汝籍이 지은 「청학집靑鶴集」을 보자.

 

환인 진인桓因眞人이 명유明由에게 수업하였고, 명유明由는 광성자廣成子에게 수업하였는데, 광성자廣成子는 상고上古의 선인仙人이다. 환인桓因은 동방선파東方仙派의 조종祖宗이고, 환웅 천왕桓雄天王은 환인桓因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나라 풍우風雨와 오곡五穀 등 360여 가지 일을 주재하여 우리 동방 백성을 교화시키더니, 단군이 그 업을 이어 교화를 편 지 1,000년에 구이九夷가 함께 받들어 천왕으로 모셨다. 작은 정자와 버들 대궐에 살면서 머리를 땋아 드리우고, 소를 타고 다니면서 백성을 다스린 지 1048년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선神仙이 되었다.

 

이 청학집은 우리 한겨레의 삼성이신 한인님, 한웅님, 단군왕검님을 중국 도교의 신화적 인물들인 명유明由와 광성자廣成子의 밑에서 중국 도교 도맥의 하부 구조를 이룬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있어서 중국 수련도교를 조선의 수련도교로 발전시킨 대가였던 북창北窓 정렴鄭磏은 단학丹學과 선도仙道라는 용어와 그 이론 을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의 최고의 단학 수련서로 일컬어지는 용호비결龍虎秘訣에서 밝혔다. 그리고 그는 용호비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동계參同契라는 한 권의 책은 실로 ‘단학丹學’의 비조鼻祖라고 할 만한 책이다.

 

이는 중국의 후한後漢시대 위백양魏伯陽이 저술한 대표적인 중국 단학의 경전인 단경丹經 참동계參同契를 조선 단학丹學의 비조鼻祖로 설정하고 있다. 이 경우는 청학집과 같이 단군을 중국 수련도교 역사의 일부로 차용하는 역사관과는 다르다.

그리고 중국 수련도교를 토착화한 조선의 단학丹學과 선도仙道의 대가인 정렴과 단학과 선도의 시조라고 하는 중국의 위백량은 수련도교 이론의 핵심으로 정기신精氣神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단군檀君을 차용借用하여 우리 한겨레의 역사를 수련도교 또는 단학丹學과 선도仙道의 역사관으로 바꾸어 설명한 청학집에서 단군과 홍익인간과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조선의 단학丹學과 선도仙道의 대가인 정렴이 지은 용호비결이나 중국 단학과 선도의 비조인 위백량이 지은 참동계의 핵심 이론인 정기신精氣神에서 단군과 홍익인간과 하나님의 진리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도의 요가yoga에서 가져올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살펴볼 때 지금 우리 한겨레는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우리 한겨레는 우리의 고유한 정신과 토착화된 외래 정신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또 하나는 토착화된 외래 정신을 마치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인 것으로 오해하고 착각하고 있는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우리 한겨레는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으로 역사를 운영하며 살아왔었다는 말조차 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단군을 찾기위해 선행해야 할 작업은 한겨레문명의 상징인 단군의 진리를 유불선 등과 분명하게 구분한 다음 그 진리가 유불선을 포함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이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단군을 찾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우리가 단군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정신은 예수는 물론 유불선과도 대화할 수 없게 된다. 대화할 주인공이 처음부터 없어지게 되므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7. 우리가 과연 단군을 알고 있는가?

 

이 시대를 사는 한겨레에게 단군과 예수의 만남과 대화는 우리 한겨레가 가진 위대한 통합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게 해주는 매우 소중한 일이 될 것이다.

먼저 단군을 A라하고 예수를 B라고 하자. 단군과 예수의 만남과 대화가 가능하려면 최소한 A와 B 두 분 중 한 분의 진리를 철학과 신학의 보편타당한 이론 체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우리가 A인 단군의 진리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 A로 B인 예수의 진리를 비교 검토하며 서로의 진리가 서로에게 얼마만큼 비슷하며 얼마만큼 다른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2,000년 동안 어떤 철학자와 신학자도 4대 복음서 안에 담긴 예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철학과 신학의 이론으로 체계화하여 설명하지 못했고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단군의 철학과 신학의 이론 체계가 먼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면 우리 한겨레의 위대한 통합의 능력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단군과 예수의 만남과 대화는 처음부터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한겨레는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과연 단군을 알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한겨레 문명의 상징인 단군의 진리를 보편타당성을 갖춘 이론 체계인 철학과 신학으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한겨레문명의 상징인 단군을 입에 담는 일은 누구나 가능하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미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시대이며 우리 대한민국은 그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한겨레 문명의 상징인 단군을 입에 담기 위해서는 세계인 앞에 나서서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어 자신 있게 이것이 한겨레문명의 근원인 단군의 철학이며 신학이라고 큰소리로 명명백백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단군의 진리를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단군께서 전해 주신 성경聖經인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에서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나는 먼저 2008년 천부경(2차 개정판)에서 우리 한겨레의 고유한 철학의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분명하게 밝혀냈다. 그리고 그 이론 체계와 지난 3천 년간 존재했던 철학인 유불선과 동서양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이론들을 하나하나 비교 검토했다.

그리고 나는 이 이론 체계의 핵심을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기업의 연구소에서 객관적인 실험을 통해 엄밀하고 구체적인 실험 결과로 명확하게 입증했다. 이렇게 해서 밝혀진 이론 체계가 내가 말하는 생명의 과정을 설명하는 철학인 한철학(韓哲學 : Hanphilosophy)이다.

이제 우리는 한겨레문명의 근원인 단군께서 전해 주신 한철학이 유불선과 동서 철학자들의 논리와 명백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유불선과 동서 철학자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한철학에 포함되는 것인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인 앞에서 이것이 한겨레 문명을 상징하는 단군의 철학의 이론 체계라고 가슴을 활짝 펴고 큰소리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한철학의 이론 체계를 바탕으로 한신학韓神學의 이론 체계인 한신론韓神論을 삼일신고(2차 개정판)을 통해 확립함으로써 4대 복음서에 내장된 예수의 신학을 찾아내 서로 비교 검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단군과 예수의 역사적이고도 의미심장한 만남과 대화를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8. 우주암호宇宙暗號와 단군과 예수

 

한겨레의 고유한 경전인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단순한 수식으로 그 핵심 진리를 설명한다. 이는 내가 ‘한韓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일곱 가지의 수식을 중심으로 하며 그 외에 여럿의 수식이 추가된다. 그 수식은 이를테면 내가 한의 제2 법칙으로 부르는 ‘100=36+64’와 같은 것이다. 이 수식들은 모두 간단한 도형과 부호 그리고 논리로 언제든 전환하여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수식들을 나는 또한 알기 쉽게 우주암호라고도 부른다. 이 책은 그 여럿의 우주암호 중 세 가지의 수식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지난 3,000년간 동서양의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을 남겼지만 이 간단한 세 가지 수식에 담긴 진리에 도달한 학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한겨레문명의 근원인 단군께서 전한 성경인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는 7개의 ‘한韓의 법칙’ 즉 우주암호들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기독교 성경 신약의 4대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씀 또한 놀랍게도 이 우주암호를 바탕으로 한다. 단군과 예수의 대화는 다름 아닌 이 ‘한韓의 법칙’ 즉 우주암호라는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이 우주암호를 처음으로 발견한 장소는 1980년대 초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사 현장이었다. 나는 현장 작업의 효율이 최저 상태일 때 일정 조건을 주게 되면 단시간에 최고의 효율을 내면서 작업자들이 하나가 되어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스스로를 자기 조직화 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이 발견으로 현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귀국 후 때 마침 우리나라에서는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가 일반 대중에게 소개되어 읽히기 시작했다. 나는 이 경전들 안에 공통적으로 사용된 언어가 수식으로 이루어진 우주암호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우주암호에 담긴 원리가 내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직접 체험한 원리와 동일한 것임을 알았다. 물론 이 우주암호가 복음서에 사용된 예수의 말씀에 담긴 우주암호와 동일한 것이다.

내가 이 ‘한韓의 법칙’을 우주암호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 법칙이 인간과 대우주를 지배하는 근본 원리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암호라고 말한 이유는 지난 3,000년간 동서양의 그 어떤 철학자와 신학자도 이를 해독하지 못했고 또한 분명한 이론 체계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우주암호는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 그리고 그 외에도 우리 한겨레에게만 전해지는 십수 권의 경전 안에도 비밀스럽게 담겨 있다. 또한 기독교 성경의 4대 복음서에 집약되어 담겨 있다. 그리고 동서양과 우리나라의 여러 자료에서도 발견된다.

이를테면 이 우주암호는 이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여러 알타이어족들의 신화와 우리나라의 인천과 영암과 지리산과 제주도 등의 여러 지방의 전설에도 비밀스럽게 숨어 있다. 또한 동양의 음양오행과 태극과 64괘의 근본 원리 또한 이 우주암호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중국인 중 이를 이해하고 설명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무속인들이 사용하는 방울에도 이 우주암호는 숨어 있다. 또한 지난 3,000년간 동서양의 모든 철학과 신학의 근본 원리를 이 우주암호는 모두 포함하고 있다. 나는 이미 발간한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에서 이 우주암호의 근본 원리를 설명했다. 이 책에서는 이 원리의 기본적인 내용과 새로운 사례들을 모아 간략하게 설명할 것이다.

이 우주암호는 과거의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것이며 미래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우주암호를 인간 개인과 사회에 적용하면 그 생명력이 극대화되고, 기계에 적용하면 기계의 성능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즉 2002년 내가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컨설턴트로 참여하여 이 한韓의 법칙, 즉 우주암호를 에어컨에 적용하여 성공한 실례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우리 한겨레의 정신에서 가장 근본적인 철학의 원리가 명백하게 엄밀성과 객관성과 구체성을 갖는 진리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 4대 복음서안의 우주암호를 실험실에서 입증한 데이터를 적용하며 설명할 것이다.

이제 단군과 예수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든 우주암호가 한철학과 한신학의 이론 체계로 전환되었고 그것은 다시 엄밀하고 객관적이며 구체적인 실험이라는 보다 확실한 새로운 언어로 다시 전환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 우주암호와 한철학과 한신학의 이론 체계를 사람들이 이해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이를 널리 활용할 수 있게 되었는가? 나는 꼭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지만 현실은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왜 그런가? 그동안 책을 통해 설명해온 이 우주암호와 철학과 신학의 이론 체계는 모든 학문분야와 실생활을 역동적인 생명의 과정으로 혁신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이론체계에 대해 공감을 가졌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공감의 수준보다 더 큰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추구한 것은 공감보다 훨씬 더 나아가 이 이론 체계를 실생활, 그리고 모든 학문과 기술과 예술에 널리 적용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나는 이같이 실생활에서 이 이론 체계를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 사고의 틀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 우주암호와 새로운 이론 체계를 보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사고의 틀을 그대로 사용하기를 고집한다. 그리고 그 기존의 사고의 틀 안에서 내가 보여 준 우주암호와 새로운 이론 체계를 이해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는 새로운 이론 체계의 중요한 부분을 이해할 수 없으며 새로운 사고의 틀로 생각하기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각 분야에서의 활용은 아예 처음부터 전혀 불가능하다.

또한 사람들은 내가 알기 쉽게 이 우주암호와 이론 체계를 설명해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지금까지 사용해 온 기존의 사고의 틀로 생각하는 한 이 우주암호와 새로운 이론 체계를 실제로 활용하고 그 사고의 틀로 생각하기는 불가능하다.

되돌아보면 이 우주암호를 철학과 신학의 이론 체계라는 보다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로 전환하여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를 실제로 활용하는 일은 아직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밤이 어둡고 지루하고 길다 해도 아침에 떠오르는 밝은 태양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우리 한겨레는 처음부터 이 사고의 틀로 생각하고 또한 역사를 창조하고 운영해온 것이다. 다만 잠시 잊은 것뿐이다. 이를 회복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 용기勇氣와 열정熱情을 가지고 이 한철학과 한신학의 새로운 사고의 틀로 생각하고 세상을 보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학문과 기술과 예술을 창조하고 싶다면 또한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9. 이 책을 쓰는 과정

 

이 책은 지금까지 처럼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연구와 집필만 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써졌다. 즉 문을 활짝 열고 강의와 대화를 하면서 기존의 이론 체계를 보다 세부적으로 가다듬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나는 2008년 천부경 2차 개정판과 2009년 삼일신고 2차 개정판의 발간으로 한철학과 한신학의 이론 체계가 확립됨에 따라 마음의 짐을 다소 덜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가을부터 때마침 작으나마 연구실을 마련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진리를 추구하는 분들과 만남과 강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366사에 내장된 한철학과 한신학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고의 틀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기존의 사고의 틀로 한철학과 한신학의 이론 체계를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강의와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한철학과 한신학의 사고의 틀을 받아들일 수 있다. 누구나 말에는 사고思考가 묻어 있고 그 사고는 그 사람이 가진 사고의 틀의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대화는 사고의 틀의 전환뿐 아니라 예상못한 새로운 성과를 얻게 해주었다. 그 첫 번째 성과는 작년 이후 강의에서 이루어진 성과이다. 그것은 이른바 우주암호이며 한철학과 한신학에 사용되어 온 이론 체계의 일부의 내용을 보다 광범위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학문적 성과이다. 강의 중 사제지간에 나누게 된 자유로운 대화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학문적 진보를 얻어낼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이 내용은 본문에서 설명하겠다.

그리고 두 번째 성과는 하나님에 관한 보다 넓고 깊은 이해이다. 나는 2009년 삼일신고(2차개정판)을 펴내며 한신론(韓神論 : Hananimism)에서는 인간의 중심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우주 전체의 중심에 존재하는 우주적 하나님과 일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이 하나님과 기독교 성경 복음서의 하나님이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 책은 이 내용을 더 넓고 깊게 설명한다.

이 책은 새빛님과의 만남과 대화에서 나타난 성과와도 연관이 있다. 새빛님은 미군 장교로서 전쟁터에서 순간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중심에 존재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새빛님은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을 미국에서 여러 성직자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누구에게도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조차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새빛님은 내가 운영하는 하나님사이트(http://www.hananim.com)의 내용이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과 일맥상통함을 보고 10년 전쯤 이메일로 연락을 해 왔다. 그리고 2009년부터 우리나라에 돌아와 근무하게 되어, 대화를 통해 교류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특히 나는 새빛님의 지난 20년간 쌓이고 쌓인 종교적 이해와 생각을 작년부터 올해에 걸쳐 처음부터 끝까지 깊은 관심을 기우리며 들었다. 딱딱한 이메일과 달리 대화는 편하고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새빛님은 이 대화에서 스스로 이해한 하나님과 한겨레의 한신론(韓神論 : Hananimism)의 하나님과 기독교 성경 복음서의 하나님이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했다. 나는 새빛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중심에 내려와 계신 하나님(一神降衷)’과 같이 중요한 내용을 이해하게 된 것을 축복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생각은 이 책을 쓰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새재님과 한샘님, 한마음님은 소중한 정성을 보내왔다. 또한 새벽님과 새일님은 힘이 되었다. 그리고 신학식님, 이동희님, 권영희님은 소중한 마음을 보내왔다. 그리고 이 책을 쓰는 동안 도움이 된 분들과 이 책을 읽는 독자님들의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고 원하는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2010년 5월 최동환 섬김

 

 

 

목차

저자 서문

1. 단군과 예수의 만남 |9

2. 우리가 과연 예수를 알고 있는가? |11

3. 한겨레공동체와 예수 |13

4. 참다운 예수의 진리란 무엇인가? |15

5. 그리스도는 신화인가? |19

6. 우리는 단군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22

7. 우리가 과연 단군을 알고 있는가? |27

8. 우주암호와 단군과 예수 |29

9. 이 책을 쓰는 과정 |33

제1장 거듭나는 삶―생명의 과정과 위기상태

1. 거듭나는 삶과 생명의 과정 |42

2. 예수의 생애로 설명하는 생명의 과정 |48

제2장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100=99+1

3. 하나님 나라의 기본 설계 원리 100=99+1 |57

4. 조화와 통합 원리로서의 100=99+1 |60

5. 챌린저 호 폭발 사건과 하나님 나라의 원리 100=99+1 |61

6. 하나님 나라의 기본 설계 원리와 단군과 예수의 만남 |68

7. 하나님 나라의 기본 설계 원리와 한겨레의 전설 |71

8. 하나님 나라의 기본 설계 원리와 몽골․부리아트 족의 신화 |80

9. 온=100 |82

10. 좁은 문과 위기상태 |85

11. 위기상태危機狀態 |88

제3장 뱀과 비둘기―100=45+55

12. 창조하는 예수와 영육통합론靈肉統合論 |101

13. 한신학과 수직적 계층 이론, 그리고 수평적 민주 이론 |106

14. 혼돈상태混沌狀態 100=45+55 |113

제4장 원수를 사랑하라! 온힘―10

15. 원수를 사랑하라!와 창조하는 중재자로서의 예수 |130

16. 온힘 10과 원수를 사랑하라! |133

17. 기존의 신론과 원수를 사랑하라! |135

18. 유신론과 원수를 사랑하라! |137

19. 범신론汎神論원수를 사랑하라! |146

20. 범재신론汎在神論원수를 사랑하라! |149

21. 공사상空思想원수를 사랑하라! |151

22. 한신론과 원수를 사랑하라! |156

23. 서양 문명과 원수를 사랑하라! |158

24. 한겨레 문명과 원수를 사랑하라! |170

제5장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일신강충

25. 복음서의 신과 기존의 신론 |185

26. 예수와 일신강충一神降衷 |191

27. 한겨레와 하나님 |195

제6장 나사렛 예수와 그리스도의 통합 : 기독론基督論―100=36+64

28. 한신학韓神學과 기독론基督論 |204

29. 혼돈상태에서 질서상태로 |207

30. 성속통합聖俗統合의 예수 그리스도 |211

31. 하나님의 성역과 율법의 성역 |222

32. 백합꽃과 예수 그리스도 |224

제7장 신학 실험神學實驗과 예수

33. 예비 신학 실험 |232

34. Han-fan의 신학 실험과 예수 |237

35. Han-fan 실험이 갖는 신학적 의의 |245

36. 이 책을 마치면서 |253

참고 문헌 |257

찾아보기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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